[졸업논문] 프랑스 대혁명에서 독일 낭만주의까지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졸업논문으로 독일 낭만주의에 대해 썼습니다.

오랜만에 전공 공부할 수 있어서 신선했고 즐거웠습니다.

육지의 거북이가 물로 다시 들어가서 헤엄치는 기분~ 🐢

역시 내 몸엔 문과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졸업논문 전체는 프랑스 대혁명, 독일 낭만주의, 문학적 절대, 독일 낭만주의 예술 등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다 썼지만 그 중 첫 번째 목차인 <프랑스 대혁명에서 독일낭만주의까지>를 올립니다.

예전에 융합전공으로 철학과 전공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쓴 주제를 다듬어서 넣었습니다.

열심히 20장 썼는데 썩히기엔 아까워서 블로그에라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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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혁명은 중세를 붕괴시키고 이를 거름삼아 새로운 시대의 싹을 틔웠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역사적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과거 봉건시대로 퇴보하지 않기 위한 명분으로 공포정치를 시행했고, 대혁명의 본질로 내세운 자유, 평등, 형제애와 상반되게 민중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소한 일로 단두대에 올라야만 했다. 대혁명을 몸소 겪었던 프랑스의 지식인들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혁명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순적인 혁명의 배면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혁명을 목도하지 않은 독일인들에게는 프랑스대혁명이 전개되며 민중들에게 가해진 억압과 숙청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고 심지어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는지를 잊은 채 미화되고 낭만화 되었다. 대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형제애 사상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지의식을 느꼈지만 독일에서는 세 가지 구호 중 오직 자유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그들만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날아온 혁명의 불씨를 틔울 수 없었다. 일단 독일은 프랑스와 달리 중앙집권체제를 형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다. 각각의 작은 국가로 흩어져있었으며 중앙집권화하기에는 지방 세력들의 사적권력이 너무나 강력했다. 또한 소국가들은 비좁은 상태였기에 독일인들은 현실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관념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다. 인쇄업의 발달로 출판시장이 거대화되고 책이 대중화되면서 독일인의 내적사유는 더 강화되었다. 그렇게 프랑스대혁명은 독일로 넘어와 내면에서 사유되었고, 관념적 혁명만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독일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외적 영역에 속한 정치를 내면으로 가져와 사유하고 낭만화 하여 실질적인 정치혁명을 이룰 수 없었다.

 낭만주의는 서양 철학사 최초로 주류인 주지주의에서 벗어나 전개된 주정주의 운동이다. 낭만주의에 이르러서야 인간의 감정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계기는 역사적으로 신흥세력인 부르주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그들의 가문에서 벗어나 개인의 능력으로 경제적, 사회적 부를 거머쥔 세력이다. 그들에게는 개인이 중요하기에 마땅히 개인의 감정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기에 이전의 봉건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감정이 중요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의 시대가 오고 나서는 개인의 감정이 중요해지며 연애의 감정 또한 중요해졌다. 과거의 봉건귀족세력이 토지를 소유하며 경제적 지위를, 기독교로 사상을 지배하여 사회적 권력을 모두 갖고 있던 반면에 대혁명의 주역인 부르주아는 상인으로서 경제적 권력만 가지고 있었고 문화 권력과 같은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단이 없었다. 과거 봉건세력의 사회적 권력의 수단이었던 기독교를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관념적 권력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을 고민 끝에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문학, 철학 그리고 예술이었다. 당시 주류의 흐름이던 책과 편지를 결합하고 연애소재를 사용한 그야말로 낭만주의의 집합체로 루소의 『신엘로이즈』를 예로 들 수 있다. 낭만적 감정은 강렬하고 극적인 감정으로, 현실에서는 연애를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연애는 낭만주의시대의 중심축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독일낭만주의자 프리드리히 슐레겔 또한 이러한 강렬하고 극적인 디오니소스적인 감정을 과거의 고대그리스에서 발견하여 주목했고 그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 또한 예나에서 슐레겔 형제의 연애 소문이 자자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접한 독자들은 소설 속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실제 일이 어떻게 소설로 각색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더 나아가 그들은 책에서 읽은 대로 현실에서 재현하고자 했고 문학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독일의 상황은 여전히 정치적 혁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내적 혁명에만 관심이 있었다. 예나 낭만주의자들 또한 문학과 삶의 경계선을 허무는 방법으로 낭만주의 운동을 널리 퍼뜨리는 것을 추진했다. 독일낭만주의자들이 말하는 낭만적 감정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포에지의 개념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낭만주의 포에지는 단순히 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문학과 삶 전반에서 시적인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을 의미한다. 포에지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포에지의 어원인 포이에시스의 의미를 보면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포이에시스는 고대그리스 시예술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여기서 시예술보다는 통상적인 의미의 생산이라는 의미와 더 밀접하다. 낭만주의 포에지는 내가 나 스스로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여기며 생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나 자신의 자기생산을 의미한다. 포에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하는 것은 미적 행위를 통한 초월세계로의 상승이다. 이를 통해 낭만주의자들이 여전히 플라톤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근거가 된다. 플라톤의 이성을 기반으로 한 지적관조가 초월적 세계로 상승할 수 있게 하지만 낭만주의에서는 감정기반의 미적 감각이 그 역할을 대신할 뿐 초월적 세계로의 상승이라는 형이상학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루소만이 그의 저서를 통해 평등을 주장하고 귀족세력과 부르주아세력의 허영을 폭로하고 기층민들의 궁핍과 차별을 진정성 있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프랑스대혁명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독일낭만주의자들의 존립 그 자체가 대혁명이 와전되었다는 명백한 증거 중 하나이다. 독일낭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피히테는 루소가 소극적인 태도로 문명의 진보와 지식인의 태도를 거부하며 짐승 같은 삶을 옹호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또한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기층민을 가르치고 인도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독일낭만주의자들의 대표인 프리드리히 슐레겔 또한 지식인들이 교육받지 못한 기층민들을 압도하여 이끌어 하나의 전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외쳐진 주장에 따르면 기층민들은 압도되고 이끌어져야하는 대상이 아니고, 지식인과 예술가는 그들의 고통과 차별에 대해 고찰하고 아직 말할 권리를 갖진 못한 그들을 대변해야하는 책임이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 공동체를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지배계층의 사치와 허영이 빚어낸 결과로 기층민들이 고통 받았던 것이 프랑스대혁명의 직접적 발발원인이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일어난 대혁명을 계승한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자들의 기층민을 교육시키고 억압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봉건적 귀족들에 가까워보인다. 봉건사회에서 인간 개개인의 내면을 종교로 통제하고 지배하며 사회정치적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낭만주의 또한 인간 개개인의 내면을 개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정치적 개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봉건적 사고에 가깝다. 초기독일낭만주의는 인간내면으로부터 사회정치로 확장되는 방향성이 있다.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내면을 변화시켜 사회정치적 체제 유지수단으로 쓰는 것을 최초로 거부한 것이 바로 프랑스대혁명이다. 하지만 이에 영향을 받은 독일낭만주의의 사상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내면으로부터 사회정치영역으로 가는 방향성을 잡은 것이 과연 프랑스대혁명을 기반으로 두었다고 할 수 있을까.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사회정치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내면 통제가 아닌 법의 정립을 강조하며, 바람직한 법의 정립만이 인간의 내면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피력하고 있다. 정치이론가 마키아벨리 또한 인간의 내면은 내적인 것이고 사회정치영역은 외면적인 것이기에 상이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개인의 내면영역과 사회정치의 외면영역이 일치한다면 그것은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에게는 불행한 일이고 전체주의로 흘러갈 위험을 초래한다. 이러한 내적, 외적 영역의 일치가 극단적으로 표출된다면 세계사에서 가장 끔찍한 학살을 초래했던 나치주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낭만주의가 나치주의에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며 낭만주의에 나치의 책임을 나누어 전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낭만주의가 변질되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나치주의에 유용하게 쓰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로부터의 혁명을 모두 진보라고 칭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참고하자면 역사는 결코 진보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과거의 파괴가 쌓여 잔해를 이루는 모습이 곧 역사이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던 원인임과 동시에 기층민들을 고통의 구덩이로부터 꺼내준 것은 다름 아닌 시민 그들 스스로였다. 부르주아가 혁명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기층민들의 피해호소가 공유되지 않고, 지식이 대중화되지 않아 그들이 모일 수 없었다면 과연 역사적으로 한 획을 그은 거대한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부르주아는 대체불가능한 자아를, 독일낭만주의자들은 비범한 천재를 찬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범인들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그들이 찬양하는 존재들도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흐름을 바탕으로 이제는 지배층이 아닌 기층민, 대중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독일낭만주의를 대변하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속 방랑자 작품에서처럼 세속적인 공간과 동떨어져있고 다른 이들 보다 더 높은 곳에서 유아독존 태도를 고수하는 것보다는 발저의 충고대로 낭만주의의 배면을 직시하고 사회로부터 규정된 자아상에서 벗어나 이제는 우리에게 온전히 속하는 것이 필요하다.